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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과학

공인인증 폐지해놓고…등본 떼려면 공인인증하라는 정부

신찬옥 기자
입력 : 
2020-12-31 16:27:52
수정 : 
2021-01-13 11:2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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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전자서명 시대 연다더니
공공사이트선 `공인`만 요구
1월 중순에나 사용 가능할듯

행안부 "시스템·제도 마련중
타 공공사이트 상반기중 가능"
세 자녀를 둔 직장인 이 모씨(50)는 지난주 가족 외식을 위해 식당을 예약하려다 황당한 경험을 했다. 식당 측에서 "5인 가족이 함께 식사하려면 같은 주소지임을 증명하는 주민등록등본 사진을 보내달라"고 한 것이다. 이씨는 정부24에 접속해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으려 했지만 기존 공인인증서 기간이 만료된 상태였다. 그는 "새로 공인인증서를 받으려고 은행 홈페이지에 접속하니, 공인인증서 대신 '금융인증서'를 받아도 된다고 했다. 그래서 권하는 대로 금융인증서를 발급받았는데 그 이후가 황당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정부24에서 등본을 발급하려니까 정부 기관에서 쓸 수 있는 아이디인 '디지털 원패스'에 가입하라고 한다. 디지털 원패스 사이트에서 가입하고 정부24 로그인까지 했는데, 등본 발급을 신청하니 다시 공인인증서 로그인 화면이 뜨더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결국 이씨 가족은 이날 외식을 포기했다.

정부가 12월 10일 공인인증서를 전격 폐지하면서 공인인증서는 다양한 인증 중 하나인 '공동인증서'로 이름을 바꿨지만, 정부·공공 사이트에서는 아직도 공인인증서를 요구하는 곳이 많다. 나 몰래 내 명의로 개통된 스마트폰은 없는지 알려주는 정부 사이트 '엠세이퍼'도 마찬가지다. 엠세이퍼에 로그인하면 본인 명의로 개통한 스마트폰 내역을 볼 수 있고, 원하는 통신사를 지정해 추가 개통이 불가능하도록 설정할 수도 있다.

대구에 사는 70대 김 모씨는 최근 휴대폰 대리점 직원이 70대 고객의 스마트폰을 개통해주면서 주민등록등본과 통장 사본으로 몰래 스마트폰 두 대를 개통하고 1500만원 대출까지 받았다는 뉴스를 봤다. 12월 스마트폰을 개통한 김씨는 혹시 본인 명의로 다른 휴대폰이 개통된 것은 아닌지 불안했다.

그는 "딸에게 물어보고 어찌어찌 검색한 끝에 엠세이퍼를 알게 됐다. 사이트에 들어가서 확인하려고 했더니 공동인증서로만 로그인할 수 있다고 하더라"면서 "이게 공인인증서가 바뀐 거라는데, 나는 불안해서 인터넷뱅킹도 안 하고 창구 거래만 하는 사람이다. 나 같은 사람은 스마트폰 명의가 도용돼도 알 방법이 없는 것이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정부24 서비스에도 보안 등급이 있다. 단순히 정부24에서 정보를 보는 것은 아이디 패스워드, 디지털 원패스, 공인인증서, 지문·보안 등 네 가지 방법으로 가능하지만, 주민등록등본은 보안 등급이 높은 자료라 아직까지 기존 공인인증서를 요구하고 있다"면서 "1월 중순부터는 민간 전자서명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카카오의 카카오인증, 은행 공동서비스인 뱅크사인, 비바리퍼블리카의 토스, 통신3사의 패스(PASS), 네이버의 네이버인증, KB국민은행의 KB스타뱅킹, NHN페이코의 페이코 등 7개 업체가 민간 전자서명 서비스를 내놓았다. 다양한 민간인증서가 나오고 관련 시장이 열리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아직은 도입을 꺼리는 곳이 많다.

정부 차원에서 보안 체계를 정비하지 않으면 개인정보 유출 통로가 늘어날 수 있다는 걱정도 있다. 한 보안업계 관계자는 "전자서명은 인터넷상에서 '내가 나'임을 증명하는 수단이다. 공인인증서가 있으면 모든 금융 거래가 가능하고 주민등록등본 같은 민감한 정보도 발급받을 수 있다"면서 "기존에는 공인인증서 하나만 관리하면 됐기 때문에 유출될 통로가 제한적이었지만, 여기저기에서 인증서를 발급받을수록 유출 우려도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행안부 관계자는 "다른 공공 웹사이트는 올 4~5월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민간 전자서명업체 평가가 끝나면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보안 우려와 관련해서도 과기정통부와 평가 인증을 해서 보안기준을 충족시키는지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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