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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금융권에 대부업체까지 "안 받아요"…제도권서 쫓겨나는 저신용자

[벼랑 끝 저신용자]② 최고금리 인하·조달비용 부담에 저축은행·카드사, 대출 문턱 높여
'제도권 보루' 대부업계는 사실상 중단…대출 절벽 장기화에 불법 사금융 피해자 양산 우려

(서울=뉴스1) 서상혁 기자, 한유주 기자 | 2023-06-12 06:00 송고 | 2023-06-12 09:55 최종수정
©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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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불법사금융 근절 노력에도 불법사금융 피해자가 늘어나는 원인은 저신용자가 제도권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현재의 시장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법정 최고금리가 20%로 낮아진 가운데 한국은행의 7연속 기준금리 인상으로 조달 비용이 급격히 오르자, 서민 금융의 한 축을 맡고 있던 저축은행과 카드 업계는 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대출 공급을 축소하고 있다. 제도권 가장자리에 있는 대부업체는 신규 대출 취급을 아예 중단했다. 업계 1위 업체는 올 연말 시장에서 철수하기로 했다.
저신용자가 설 자리는 더 좁아질 전망이다. 경기가 점차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어, 올 한해 금융권은 연체율 등 건전성 관리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대출 문턱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불법'임을 알고도 불법사금융을 이용하는 사례가 속출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 저신용자 대출 문턱 높인 저축은행·카드사…"고신용자 받는 게 이익"

저축은행중앙회 공시에 따르면 개인신용대출을 3억원 이상 취급한 업체 중 신용점수 600점 이하 차주를 대상으로 대출을 취급하지 않은 곳은 지난 4월말 기준 11곳으로 나타났다. 2년 전인 2021년 5월말 6곳에서 이듬해 5월말 7곳, 11월말 8곳으로 늘더니 올해 들어 더 많아졌다. 3억원 이상 신용대출을 취급하는 업체는 더 줄었다. 2021년 5월말 37개사에서 이듬해 5월 35개사, 올 4월말엔 31개사로 감소했다.

목표치 달성 시 인센티브를 주는 민간 중금리 대출 취급액도 감소했다. 올 1분기 사잇돌 대출을 제외한 민간 중금리 신용대출 취급액은 1조6685억원으로 전년 동기(2조7595억원)보다 40% 줄었다. 취급 건수는 14만6683건에서 11만516건으로 감소했다. 취급을 중단한 업체는 1년 전과 비교해 3곳 늘었다.
지난해 한국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급격히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저축은행이 대출 문턱을 높인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조달비용 상승분과 대출차주의 연체 리스크를 대출 금리에 모두 반영하면 법정 최고금리(연 20%)를 넘어설 수밖에 없으니, 차라리 이자를 덜 받더라도 신용도가 우량한 차주에 대출을 내주는 게 이익 측면에서는 더 낫다"고 말했다.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19.4%였던 저축은행 가중 평균 금리는, 2020년 17.7%, 2021년말에는 15.9%로 떨어졌다. 2022년말에는 15.3%로 더 내려갔다. 신용평점 상위 30% 차주 대상 신용대출 잔액은 2021년 3308억원에서 2022년 4098억원으로 증가했다.

저축은행과 서민금융의 한 축을 맡고 있는 카드업계도 상황은 비슷하다.국내 7개 전업 카드사(신한·삼성·KB·롯데·우리·하나·현대)의 신용점수 700점이하 차주 대상 카드론 신규 취급액은 지난해 4분기 1조974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3% 줄었다. 지난 4월 기준 국내 7개 전업 카드사(신한·삼성·KB·롯데·우리·하나·현대) 중 6곳은 500점 이하 차주를 대상으로 카드론을 취급하지 않았다.

◇ '제도권 마지막 보루' 대부업체마저 대출 중단…업계 1위 '러시앤캐시'도 올해 짐 싼다

카드사와 저축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지 못한 저신용자가 갈 곳은 제도권 끝자락에 있는 대부업체밖에 없다. 하지만 대부업체도 저신용자를 외면하는 건 마찬가지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상위 69개 대부업체의 올해 1분기(1~3월) 신규 취급된 신용대출은 총 2052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분기 대비 81.9%, 직전 분기 대비 44.7% 줄었다.

현재 자산 규모 상위 24개 대부업체 중 10개사는 신용대출 취급을 중단했다. 이들 업체는 그나마 담보대출은 적극적으로 취급해 왔는데, 부동산 시장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지금은 주택담보대출 영업을 모두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1위인 러시앤캐시는 올 연말 대부업 시장 철수를 공식화했다. 예정보다 6개월 빠르다.

대부업계는 2금융권에 비해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타격을 더 크게 입었다. 카드사 등 여신전문금융회사와 저축은행은 여전채와 예금으로 시장에서 자금을 직접 조달할 수 있으나, 대부업체는 2금융권으로부터 자금을 차입해야 한다. 2금융권이 자금을 끌어오는 비용에 웃돈을 얹어줘야 하는 구조다.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실이 한국대부금융협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부업체 상위 16개사의 신규 차입 금리는 지난 연말 기준으로 8.65%로 집계됐다. 지난해 6월말만 해도 연 5.61%였는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레고랜드 사태 여파로 2금융권이 자금 수급에 어려움을 겪게 된 나머지 금리를 더 높인 것이다. 올 2월에는 10%에 근접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통상 대손비용 8%p와 광고비 3%p가 고정비용으로 책정되는 만큼, 8% 수준의 조달 금리로 저신용자에 대출을 내줬다간 '역마진'을 본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 예견된 '대출 절벽'…2021년 법정 최고금리 인하 이후 대부업 이용자 16.6만명 줄어

저신용자의 '대출 절벽' 현상은 지난 2021년 법정 최고금리가 연 24%에서 20%로 낮아졌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대출 금리에는 차주의 신용 리스크와 금융회사의 자금 조달 비용이 반영된다. 그중 조달비용은 대출 원가다. 낮아진 금리 상단을 맞추기 위해 금융회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존 대비 리스크가 작은 차주에 대출을 내주는 것밖에 없다. 여기에 지난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원가마저 급격히 불어나면서 저신용자의 탈락 속도는 더욱 가팔라졌다.

금융감독원의 대부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등록 대부업체의 이용자수는 법정 최고금리 인하 직전인 2021년 6월말 123만명에서 1년 후인 2022년 6월말 106만4000명으로 13.4% 감소했다. 자산 100억원 이상인 대형 법인 대부업체 이용자수는 108만2000명에서 92만3000명으로 14.6% 줄었다.

최철 숙명여대 교수가 금감원의 대부금융시장 통계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최고금리가 연 24%에서 20%로 떨어진 2021년 7월을 기준으로, 그해 연말 대부금융시장 신용대출 규모는 7조298억원으로 전년 대비 3379억원이 감소했다. 법정최고금리 인하 방안이 발표되기 전인 2019년 연말(8조9109억원)과 비교하면 약 21%(1조8811억원)가 줄었다. 대부업 이용자 대다수가 저신용자임을 감안하면, 상당수가 자금을 구하기 위해 불법사금융을 이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 금융권 리스크 관리 강화 기조로 올해도 대출 절벽 이어질 듯…"불법사금융, 인지하고도 이용"

저신용자의 대출 절벽은 지속될 전망이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동결 기조를 이어가고는 있으나, 인하 시점은 불투명하다는 점에서 시장금리는 앞으로 상당 기간 고공행진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행 대출행태서베이에 따르면 2금융권은 올 2분기 연체율 등 건전성 관리를 위해 대출 심사를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2금융권의 대출 차주에는 저신용자 외에 대부업체도 포함돼 있다.

이에 따라 불법사금융으로 밀려나는 저신용자는 한층 더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부업체가 하나둘씩 대출 영업을 중단하면, 나머지 업체들은 리스크 관리를 위해 대출 심사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며 "은행권의 경우, 모 은행이 영업을 중단하더라도 나머지 은행들이 파이를 나눠 먹을 여력이 되지만 대부업체는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부업체가 문을 닫을수록, 저신용자 대출 시장의 파이는 줄어드는 구조라고 보면 된다"며 "불법사금융 피해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미 전조는 나타났다. 지난 3월 저신용자 대상으로 출시된 소액생계비대출에는 한 달 만에 2만5500여명의 저신용자가 몰렸다.현재 속도라면 올 9월말엔 정부가 준비한 재원 1000억원이 소진될 전망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금융회사의 국민행복기금 잉여금 기부 등 640억원의 재원을 추가로 확보하기로 했다. 금융당국의 당초 예상보다 저신용자의 자금난이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일각에선 불법사금융임을 인지하고도 돈을 빌리는 사례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서민금융연구원이 지난 달 발간한 '저신용자 및 우수대부업체 대상 설문조사 분석'에 따르면 2022년 불법사금융 피해자 중 '불법 사금융업자인 것을 알고 돈을 빌렸다'고 대답한 이들은 전체의 77.5%로 나타났다. 전년 대비 20.1%p 상승한 수치다.


hyu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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